멈출 수 없었던 본능|연쇄살인범 정남규의 섬뜩한 심리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씻을 수 없는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 정남규. 그는 유영철과 유사한 시기에 활동하며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특히 유영철의 범행으로 알려졌던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지면서 그의 잔혹성은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피 냄새를 맡고 싶다. 피 냄새에서는 향기가 난다"는 섬뜩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100명을 죽여야 하는데 채우지 못하고 잡힌 것이 억울하다"고 말하는 등 살인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냈습니다. 법정에서는 "더 이상 살인을 못 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고 토로하기까지 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쾌락살인마, 정남규

현장검증에서 웃고 있는 정남규

 

정남규의 흉악성은 KCSI 요원들 사이에서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았으며, 전문 프로파일러들조차 그의 이름 앞에는 욕설을 붙일 정도였습니다. 일반적인 범죄자들이 형벌을 피하기 위해 동정심에 호소하거나 사실을 은폐하려 하는 것과 달리, 그는 시키지 않은 자백을 하거나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등 사형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연쇄살인범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사례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범행을 감추거나 스스로 잊어버리는 모순적인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301회, 579회, 632회 세 차례에 걸쳐 정남규의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루었으며, 2019년 10월 27일 방영된 1188회에서는 사망 직전 그의 얼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팟캐스트 및 유튜브 방송 <김복준 김윤희의 사건의뢰>에서는 그를 직접 면담했던 프로파일러 김윤희 교수와 형사 출신 김복준 교수가 그의 이상 심리를 분석하며 더욱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불우했던 과거, 범죄의 씨앗이 되다

1969년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태어난 정남규는 농사를 짓는 가정의 3남 4녀 중 다섯째이자 장남이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남원에서 자취하며 상업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족이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영진상업고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학창 시절 성적은 중하위권이었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음료 공장, 방앗간, 건축 공사장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하사로 만기 제대한 후에는 무직으로 생활하며 절도 등 범죄 행위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은 범죄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끊임없는 폭행, 동네 아저씨로부터의 성추행과 성폭행, 학교폭력과 집단괴롭힘, 선배들의 가혹행위와 성폭행, 심지어 군대 내에서의 기수열외까지, 그는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끔찍한 폭력들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과거는 그에게 사회에 대한 깊은 원한과 복수심을 심어주었고,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범죄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물론 그의 불우한 과거가 그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살인 이전에도 수차례 교도소를 들락날락했으며, 다시 자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고 극단적인 범죄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인간성 파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년 3개월간의 끔찍한 범행 일지

밑창을 도려내 족적을 숨기기도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약 2년 3개월 동안 서울, 경기 지역을 무대로 끔찍한 연쇄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의 범행은 초기 골목길에서 흉기를 이용한 여성 대상 습격에서, 점차 주택 침입 후 둔기 사용 및 방화로 대담하고 잔혹하게 변화했습니다. 아래는 그의 소름 돋는 범행 일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2004년: 연쇄살인의 시작과 흉기 습격

  • 2004년 1월 14일: 부천 초등생 살인 사건 - 밤 9시경,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2동 놀이터에서 윤모 군(13세)과 임모 군(12세)을 칼로 위협하여 인근 춘덕산으로 끌고 가 성추행 후 스카프 등으로 목 졸라 살해했습니다. 시신은 16일 후 춘덕산 정상 부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정남규 검거 후 자백으로 밝혀졌습니다.
  • 2004년 1월 30일: 구로동 빌라 습격 상해 사건 - 새벽 3시경,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빌라에서 귀가하던 원모 씨(44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4년 2월 6일: 이문동 살인 사건 - 오후 7시 10분경,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길을 지나던 전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은 한때 유영철의 범행으로 알려졌으나, 정남규의 자백으로 진범이 밝혀졌습니다.
  • 2004년 2월 10일: 군포 우유 배달부 살인 사건 - 오전 6시경,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을 하던 손모 씨(28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습니다.
  • 2004년 2월 13일: 신길동 골목길 습격 상해 사건 - 오전 6시 30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골목길에서 서모 씨(30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4년 2월 25일: 신길2동 골목길 습격 상해 사건 - 오전 1시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2동 골목길에서 홍모 씨(29세, 여)를 흉기로 수회 찔러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4년 2월 26일: 신림동 시장 골목길 습격 상해 사건 - 오전 6시 20분경, 서울 관악구 신림4동(현 신사동) 신림시장 골목길에서 출근하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박모 양(17세, 여)을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4년 4월 8일: 신길4동 귀가 여성 살인 미수 사건 - 오전 2시 30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에서 귀가하던 정모 씨(25세, 여)를 흉기로 수회 찔러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습니다.
  • 2004년 4월 22일: 고척동 여대생 살인 사건 - 오전 3시경, 서울 구로구 고척2동에서 귀가하던 김모 씨(20세, 여)를 따라가 집 앞에서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했습니다.
  • 2004년 5월 5일: 휘경동 습격 상해 사건 - 오전 2시 30분경,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귀가하던 최모 씨(22세, 여)를 따라가 흉기로 수회 찔러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4년 5월 9일: 보라매공원 살인 사건 - 오전 2시경,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남문에서 귀가하던 김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비 오는 목요일 밤의 괴담'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 2004년 8월 4일: 안양 주택 침입 상해 사건 - 오전 3시경,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주택에 침입하여 잠자던 안모 씨(50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혔습니다.

 

2005년: 범행 수법의 변화와 주택 침입

  • 2005년 4월 6일: 안양 주택 침입 방화 및 상해 사건 - 오전 1시 30분경,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주택에 침입하여 잠자던 강모 씨(71세, 여)와 한모 양(13세, 여)을 둔기로 내려쳐 부상을 입히고 방화했습니다.
  • 2005년 4월 18일: 시흥동 빌라 침입 상해 사건 - 오전 3시경, 서울 금천구 시흥3동의 한 빌라에 침입하여 잠자던 모자(46세, 여; 12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5년 5월 30일: 군포 우유 배달부 살인 사건 - 오전 4시 30분경,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을 하던 김모 씨(41세,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 2005년 6월 4일: 광명 주택 침입 상해 사건 - 오전 2시 55분경,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한 주택에 침입하여 잠자던 김모 씨(36세, 여)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5년 10월 9일: 봉천동 장애인 주거 시설 침입 상해 사건 - 오전 3시 20분경, 서울 관악구 봉천11동(현 인헌동)의 한 장애인 주거 시설에 침입하여 잠자던 홍모 씨(39세, 여) 등 2명을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5년 10월 19일: 봉천동 주택 침입 살인 및 방화 시도 사건 - 오전 5시경, 서울 관악구 봉천10동(현 중앙동)의 한 주택에 침입하여 변모 씨(26세, 여)를 성추행 후 목 졸라 살해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동생 변모 씨(23세, 남)를 둔기로 내리친 후 불을 질렀습니다. 남동생이 나오지 못하도록 젓가락을 문에 끼워 잔혹성을 더했습니다.

 

2006년: 검거 직전까지 이어진 흉악 범죄

  • 2006년 1월 14일: 창동 반지하 주택 침입 미수 사건 - 오전 4시경,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반지하 집에 침입하여 잠자던 김모 양(7세, 여)을 추행, 구타하다가 아이 아버지의 인기척에 놀라 도주했습니다.
  • 2006년 1월 18일: 수유동 일가족 살인 및 방화 사건 - 오전 5시경,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송모 씨(48세, 남)의 집에 침입하여 둘째 딸(17세, 여)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 후 목 졸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첫째 딸(21세, 여)과 막내아들(12세, 남)까지 총 3명을 살해했습니다. 생존한 아버지 송모 씨는 이 사건으로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 2006년 3월 27일: 봉천동 세 자매 살인 및 상해 사건 - 오전 4시 50분경, 서울 관악구 봉천8동(현 청룡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하여 잠자던 김모 씨(25세, 여) 등 세 자매를 둔기로 마구 내려쳐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 2006년 4월 22일: 신길동 주택 침입 검거 사건 - 오전 4시 40분 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의 한 반지하 집에 침입하여 잠자던 김모 씨(24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상해를 입혔으나, 격투 끝에 피해자와 그의 아버지에게 제압당하여 경찰에 인계되었습니다.

 

이처럼 정남규의 범행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그 대상과 수법 또한 점차 잔혹하고 대담해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의 범행은 사회 전체에 깊은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극적인 검거와 프로파일링의 중요성

정남규는 2006년 4월 22일 새벽, 신길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20대 남성을 둔기로 폭행하려다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찰서로 이송되기 직전 순찰차에서 도주했다가 2시간 만에 주민의 신고로 다시 검거되는 등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정남규 검거 과정에서 프로파일링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단순 강도상해범으로 여겨질 뻔했던 그를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끈질긴 추궁 끝에 연쇄살인범임을 자백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부천 초등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힌트를 얻어 그의 자백을 이끌어낸 것은 프로파일링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이코패스를 넘어선 악마성, 그리고 비극적인 최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본

 

체포 후 심문 과정에서 정남규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쾌락을 느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범행의 편리성을 위해 CCTV가 없는 서민층 거주 지역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 살인을 더욱 쉽게 저지르기 위해 장거리 도보 이동, 달리기 연습, 악력기 운동 등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심지어 과학수사 관련 잡지를 탐독하고 범죄 관련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고 수사망을 피하는 방법을 학습하기도 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는 섬뜩한 발언을 남기며 2007년 4월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11월 21일, 서울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반인들은 사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추측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더 이상 살해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정남규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신조차 살해하고 끝난 사람이다. 살인의 끝은 자기 자신이었다"고 말하며 그의 섬뜩한 최후를 정의했습니다.

 

정남규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며, 쾌락 살인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의 실태와 그 배경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끔찍한 범죄 행각은 영원히 잊혀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으로 남아있습니다.